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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출 체계의 재가동 === 청평의 대약진을 다른 공산국가의 집단화와 가장 뚜렷하게 구별하는 것은, 혁명 정부가 식량을 거두기 위해 북산 총독부의 공출 체계를 거의 그대로 되살렸다는 점이다. 1949년 혁명 정부는 총독부가 1930년대에 작성한 토지 대장과 수확량 조사표, 마을별 공출 할당 장부를 대부분 온전히 넘겨받았다. 1950년대 초에는 이 자료가 토지 개혁의 근거로 쓰였으나, 1958년 곡물 징발 목표가 급격히 늘자 식량부는 식민지기의 공출 할당 방식을 그대로 부활시켰다. 마을마다 수확 예상량을 정해 일정 비율을 선납하게 하고, 미달하면 마을 책임자를 처벌하는 방식이었다. 공출 창고와 수송 경로, 심지어 일부 지역의 공출 담당 하급 관리까지 식민지 시절의 것이 그대로 쓰였다. 농민들은 곧 이를 알아보았다. 1944~1945년 북부 대기근을 겪은 세대에게 트럭에 실려 나가는 곡물과 텅 빈 창고는 불과 15년 전의 풍경과 똑같았다. 북부 평야의 농촌에서는 "총독부가 붉은 깃발을 달고 돌아왔다"는 말이 돌았고, 이 시기를 가리키는 '제2 총독부 시대'라는 표현이 생겨났다. 당은 이런 말을 퍼뜨린 사람들을 반혁명 선동죄로 처벌했다. 역설은 수치에서도 드러난다. 1930년대 후반 총독부는 북부 평야 쌀 생산의 3분의 1 이상을 반출했는데, 1959년 청평 정부가 지시한 징발 비율 역시 수확량의 3분의 1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총독부는 실제 수확량을 기준으로 거두었지만 혁명 정부는 부풀려진 보고 수확량을 기준으로 거두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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